현숙 왜 결혼도 못하고 경찰에 고소했나?결국 집접 입을 열었다!
가수 현숙이 오랜만에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서 팬들을 찾아온다는 소식에 많은 화제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 가수 현숙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현숙의 나이와 결혼 재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려한 스타의 삶으로만 보였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굴곡도 있고 나름 애달픈 인생을 살았던 현숙인 것 같습니다.
현숙은 어린시절 동네 장기자랑에서 이런저런 물품을 상으로 받아왔는데 이 때문에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 학생신분을 숨기려고 가발을 쓰고 노래자랑에 나가기도 하였다는데 열정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었고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 김제에서 상경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현숙의 어머니는 묵묵히 응원해주셨다고 합니다. 눈이 내리던 겨울날 떠나는 막내딸을 위해 쌀 한말과 김치한통, 돈 만원을 쥐어주시며 눈물의 배웅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힘들게 상경했지만 서울의 삶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친구 언니 집에서 머무르며 돈을 아끼기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않고 걸어다니고 식사도 하루 한 끼만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숙은 가수 고 김상범을 만나며 꿈을 이루게 됩니다.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레코드 사무실에서 매일 아침 청소를 했는데, 현숙의 성실함과 끼를 알아본 故김상범이 본인이 음반을 내는 데 같이 해보겠냐고 가수 데뷔를 제안한 것것이였습니다. 현숙은 이로인해 가수로 데뷔하게되었고 이후 '타국에계신 아빠에게'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이후 작곡가 김정택과 만나며 인생의 히트곡을 만나게됩니다.
현숙이 '효녀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건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는데요. 치매 아버님을 모시고 오랜 지병으로 투병 중이던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현숙의 모습이 전국민의 마음을 울린 것.
'사랑하는 영자씨' 노래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다시 한 번 현숙이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지만, 방송 후 3개월 뒤 현숙의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현숙은 "아버지가 '어머니 잘 모시라'고 '사랑하는 영자씨'를 선물로 주신 것 같다"며, 그 후에 국가에서 훈장을 받고 현숙은 효열비를 세운 국내 최초 연예인이 됐습니다.
가수 현숙은 효녀 가수로도 유명한데요. 현숙의 어머닌 중풍으로 쓰러져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투병 중에서 두차례나 심장이 멎는 고비를 맞이하였으며 현숙의 12남매 자식을 낳아 기른 어먼의 헌식적인 사랑에 보답하듯 현숙은 평소 효너가스로 불리며 바쁜 가수 생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곁을 지켰는데요.
현숙과 현숙이 어머니는 평소 기부천사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머니는 전 재산을 기부하기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숙의 어머니는 200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숙의 아직 미혼인데요. 부모님과 함꼐 사느라 혼기 시기를 놓쳤다고 합니다.
이후 투병 중이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현숙은 지인을 통해 한 남성을 소개받았다는데요. 현숙은 왜 자신을 만나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그 남성이 "현숙 씨라면 저희 어머니를 잘 모실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며 "'간병인을 구하지 왜 나를 만나'나 싶어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충격 받은 현숙은 집에 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홀로 있는 딸을 걱정하셨던 것과 달리, 현숙은 주변 동료와 나누며 사는 삶을 지내고 있다는데요. 라디오 DJ로 유명한 김혜영은 현숙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연입니다. 방송국에서 오며가며 인연을 맺은 뒤 어느덧 26년지기가 된 두 사람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를 먹으며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1997년 사구체신우염 투병 중이던 김혜영에게 현숙은 자신의 신장을 기꺼이 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다행히 기적처럼 김혜영이 건강이 좋아졌고, 둘 사이는 더 애틋해져 현재까지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현숙은 평소 기부와 노인들을 위해서 각종 봉사 등 재산을 축적하기 보다는 좋은 일에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노처녀’ 현숙 씨로부터 야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옷을 벗겨 목욕을 시켜드린 이야기다. 현숙 씨가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야한 이야기’라는 표현이 흰소리라는 것을 짐작했을지 모르겠다. 그녀는 작년 5월 전남 장흥군의 뇌졸중(중풍) 노인 환자들을 위해 이동목욕차량을 기증하고, 그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노인 환자들을 목욕시켰다고 한다.
“내가 목욕시키게 된 할아버지는 체격이 건장하시더라고. 중풍으로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셨다고 해. 때를 밀어드리는데, 너무 많이 나와. 아파서 몇 년 동안 목욕을 못 하셨으니 당연한 일이지.”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리다가 현숙 씨는 문득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녀인 내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좀 그렇지만, 할아버지 고추를 닦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하셨다니 당연히 씻겨드려야 하는데, 남자들은 아무리 늙어도 발기가 된다고 하잖아. 내가 씻겨드리는 도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더라고.”
하지만 현숙 씨는 눈을 질끈 감고 할아버지의 온 몸 전체를 다 닦아 드렸다고 했다. 다행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워낙 오랫동안 중풍을 앓으셔서 몸이 쇠약해진 탓이겠지.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셨다고 하더라고. 목욕을 다 시켜드리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어어~’ 소리를 지르시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몸을 일으키시려고 애쓰시며 어눌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어. ‘현숙아, 또 와, 또 와야 해~’ 그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 내가 어떻게 또 안 갈 수 있겠어?”
그녀가 아픈 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신 효녀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다. 고향인 전북 김제에 효열비가 세워질 정도다.
그녀는 뇌졸중 환자를 둔 가족들이 얼마나 고생하는 지를 잘 알고 있다. “엄마 목욕을 시키려면 이불에 몸을 눕혀서 옮겨야 했어. 약물 때문에 체중이 엄청나게 불어나 계셨기 때문에 나와 시누이가 함께 옮기는 게 벅찼지. 이동목욕차량을 보니 정말 편리하더군. 이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중풍 어르신이 많은 지역에 매년 한 대씩 기증하자고 마음먹었지.”
현숙은 4000만원으로 연평도에 이동목욕차를 기부하는가하며 SBS '좋은아침'에 출연하여 아직 미혼인 현숙은 막내조카를 양자로 입양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현숙의 남동생 부부가 혼자 외로워할 현숙을 걱정하여 어려운 결정을하였고 현숙도 이에 기뻐하며 자신의 조카를 양자로 기쁜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현숙은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하여 "편찮으신 부모님 두 분을 모시기위해 열심히 일을했다. 남들의 다섯 배나 되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일하느라 결혼할 시기를 놓쳤다"고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현숙은 미혼입니다.
하지만 언제든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결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현숙은 출연료와 재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지만 현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인 만큼 적은 금액을 받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오랜 가수 생활로 재산이 많은 것으로 예상이 되지만 긴 어머니의 투병생활로 인해 많은 돈을 썼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예쁜 마음씨 만큼 얼른 좋은 짝이 나타나 여자로 제2의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겠습니다.
1990년 11월 5일, 현숙은 서초경찰서에 동료가수 방미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현숙의 고소장에 따르면 방미가 지난 3월 27일, 본인과 몇몇 지주들이 신축중인 서울 서초구 빈포동 577-56 3층빌라에 현숙을 데려가“전망이 좋은 301호실이 내 방”이라며 현숙에게 301호를 5억5천만원에 팔기로 하고 계약했다. 그러나 현숙은 10월 8일, 공사장을 둘러본 뒤 방미가 소유하는 방이 301호실이 아니라 전망이 좋지 않은 맞은편 302호실임을 알고 이에 항의하자 방미가 "나도 얼마전에 알았다”며 발뺌하여 현숙은 1억여원의 손해를 보았다.
우리 착한 현숙 누나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