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잘못 만난 현미 결국 스스로 입을 열었다!
트로트가수 현미가 인생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오늘은 '현미 열애 연하 남친'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수 현미가 8일 방송된 KBS1TV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6살 연하의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는데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당시에 MC들은 "이렇게 젊게 사는 비결이 뭐냐? 연애를 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묻자 이에 현미는 "맞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사람이 살아 갈 때 사랑이 존재해야 노화하지 않고 긴장하고 살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조영구가 "남자친구가 몇 살 연하냐?"고 묻자 현미는 "왜 그래 왜 그래 몰라"라며 쑥스러워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 현미의 남자친구는 6살 연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미는 "사랑은 아름다워야 한다. 죽는 날까지 사랑은 아름답게 생각해야 한다"며 "동생들이
부담이 없다. 같이 밥 먹고 영화 구경도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상황에서 여자로서 엔돌핀이 나온다.
사랑은 아름답다"라며 황혼 연애에 대해 말했다.
이날 현미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작곡가 고(故) 이봉조가 유부남이었던 러브 스토리를.
현미(玄美, 본명: 김명선)는 1957년 미8군 무용수로 처음 활동하다 1962년 정식 가수 데뷔한후 1966년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에서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했다.
1963년에는 '보고싶은 얼굴'이라는 곡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패티 김, 이미자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 가수로서 인지도를 넓혀갔다.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을 줬고 그때부터 팝과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불렀다.
1962년 이봉조와 함께 현미가 작사한 '밤안개'를 발표하여 단번에 스타덤에오릅니다. 이후 히트곡으로는 '보고싶은 얼굴','떠날 때는 말 없이 ','별'이 있습니다.
1960년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국민가수 현미씨는 ‘밤안개’의 작곡가였던 이봉조 만나 결혼하고 두 아들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본처가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둘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고, 이봉조에게는 본부인인 노전숙(이름)이 있었습니다.
현미: "결혼 전에 남편에게 아이가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이가 두 명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돼 충격을 받고 집을 나왔다."
현미: "하지만 (작곡가인) 남편 때문에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여전히 존경한다."
사실 현미가 오늘날에도 이름을 남기는 유명한 가수이지만, 한때 이봉조는 그보다 더 유명한 스타 작곡가였습니다.
이봉조는 노전숙을 1951년에 만나 연애를 했고, 1956년 정식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봉조 노전숙 부부는 1957년과 58년 연년생으로 딸을 낳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전숙은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노전숙: "둘째딸을 낳았을때 사람들이 심상찮은 상황을 귀뜸해 주었어요.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물어물어 사무실로 찾아가서 현미씨를 만나서 사정을 했어요. 처자가 있는 분이니 제발 관계를 청산해 달라고요."
노전숙: "그랬더니 "딸만 둘 있으시대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러더니 현미씨가 휙 나가버려요."
그후로도 노전숙은 여러번 현미를 찾아가서 애원과 호소를 했지만 별무소용이었습니다.
현미는 이봉조와 더불어 사실혼 관계(실질적인 부부생활)를 유지하면서 아들을 낳습니다(현미 배우자, 현미 남편).
바로 1962년에 고니(큰아들 이영곤의 가수 예명)와 둘째 아들 이영준을 낳죠(현미 자녀 자식)
그런데 현미의 말은 노전숙과 좀 다릅니다
현미: "21세에 처음 그분을 만나 3년 동안 진하게 연애를 했다. 당연히 총각이라 생각했고 이봉조가 아이 둘 딸린 유부남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
현미: "그러다 임신 7개월이 됐을 때 이봉조의 본처가 찾아와 자신의 남편이 유부남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때 그분에게(이봉조의 본처) '저는 몰라요. 결혼하자고 해서 청혼을 받았고, 지금 임신 7개월째에요. 결혼하자고 하면 할꺼에요'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을 너무 가슴 아프게 한거 같아 후회가 된다."
현미와 노전숙의 말이 서로 다릅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기에, 이런 미묘한 차이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죠.
현미가 큰아들 이영곤을 1962년에 낳을 때, 본처 노전숙도 아들 이영대를 1962년에 낳습니다(같은 해이지만, 이영대의 생일이 12월 15일이기에 거의 1년 정도 차이가 남).
그리고 현미가 둘째 아들 이영준을 낳고, 후에 노전숙이 막내딸 이지수를 낳게 되죠.
즉, 이봉조는 동시에 두집 살림을 했고, 본처인 노전숙은 남편에게 첩이 있다는 사실을, 현미 역시 (만약에 그녀의 말대로 첫째 임신 7개월까지 이봉조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봉조에게 본부인과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동거 생활을 했다는 뜻이죠.
그렇게 세남녀의 두집 살림이 계속되다가, 1974년 현미와 이봉조는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좀 웃깁니다. 현미가 남편을 본부인에게 돌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봉조가 바람이 났기 때문입니다.
(후에 현미가 남편을 본부인에게 돌려보내기 위해서라고 인터뷰를 하는데,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당시 이봉조는 가수 김추자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났다가 현미로부터 결별 선언을 듣게 된 거죠. 이때 언론에 발표된 것으로, 두 사람은 완전한 이혼이 아니라 별거로 공식 발표를 합니다.
현미: "남편과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럴 바엔 여기서 죽자’며 칼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러는데 어떻게 집문서를 가지고 나오겠냐. 어떡하면 도망갈 수 있을지만 고민했을 정도로 무서운 위협을 당했다. 아파트 정문에서 숨어있기도 했다."
현미: "부부사이를 청산하는데 따라 자식들에게 미칠 부작용을 생각해 냉각기를 갖는 것으로 결정을 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이봉조의 본부인이 현미로 알고 있었습니다. 노전숙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좀더 보충하면, 이봉조의 여자관계는 현미외에도 복잡했습니다.
현미: "질투도 많이 했다. 어린 나이에 싸움도 많이 하고 울었다. 그래도 엄앵란 씨하고 항상 우리가 잘난 사람하고 사니까 50%로만 차지하면서 감사할 줄 알자라는 말을 하곤 했다."
현미: "새벽에 전화가 오곤 했다. 호텔에 이봉조씨와 어떤 여자가 들어갔다고. 그러면 나는 내 남편은 내가 관리하니까 이런 전화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는 내 남편이고 내 스승이니까 내가 보호했다. 그래서 기자들도 나를 열녀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다가 이봉조는 1987년 심장마비로 급사하게 됩니다.
현미: "별거에 들어가면서 남편에게 본처에 들어가 살라고 했지만 들어가지 않고 13년간 홀로 살았다. 남편을 찾아갔을 때는 당뇨로 수척해져 이후 남편에게 반찬도 해주고 방문했다."
현미: "이후 다시 재결합(재혼)을 하기로 약속했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헤어지지 말고 더 이해하면서 살았으면 좋았을걸...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현미와 이봉조, 노전숙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당사자들의 증언에도 거짓말(혹은 모호한 기억)이 섞여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기란 매우 힘듭니다.
본처와 자식들이 있는데도 거짓말로 속이면서 당시 처녀였던 현미와 동거 생활을 합니다. 본인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노전숙과 현미, 그리고 자식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봉조, 현미, 노전숙에게는 잘못이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봉조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죠.
노전숙: "남편의 부고장에 현미에게서 낳아진 두 아들의 이름도 다 넣었다. 그러나 호적에는 네 자녀뿐이다. 이봉조가 그쪽 두 아들의 입적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미의 두 아들은 호적때문에 상당 기간 고통을 받게 됩니다.
남녀간에 실수를 해서도 안되지만, 실수를 한 뒤에는 뒷수습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봉조는 완전히 못본 척을 해버렸네요.
두번째는 현미의 잘못 역시 큽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현미는 중요한 말을 합니다.
현미: "(이봉조가 바람을 피워서) 부부사이를 청산하는데 따라 자식들에게 미칠 부작용을 생각해 냉각기를 갖는 것으로 결정을 지었다."
자기 자식이 중요하면, 남의 자식 역시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현미는 왜 몰랐을까요?
또한 자신이 이봉조의 바람기때문에 시달리면서, 왜 노전숙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을까요?
단순히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만 생각하면 되는 '간단한 사실'을, 대부분의 인간들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 그녀는 월세를 내고 있다고 밝히며 믿었던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월세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1500만원에 달하는 건강보험료를 연체하기도 했었다고 생활고를 겪은 사연도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
가수 현미는 가정생활이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고 고백했어요.
미국에서 살고 있는 두 아들은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지병을 물려받아 당뇨, 심근경색 등으로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또 현미씨는 과거에 방송된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 심장마비로 쓰러져 뇌사판정을 받은 큰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데뷔 55주년 기념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심장이 좋지 않았던 아들이 쓰러졌고. 뇌사상태였는데 5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고 합니다.
가수 현미씨의 아들 가수 고니는 2008년 4월 첫 싱글 음반을 발표하며 '미운정 고운 정'이라는 곡으로 활동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이영준씨는 미국에서 부동산업을 하며 1990년 11월 가수 원준희씨와 결혼은 했는데요. 현미의 며느리 원준희씨는 1988년에 '사랑은 유리같은 것'을 발표하고 약 2년간 미모와 가창력으로 수많은 남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정상에 올랐던 가수입니다. 그러나 1990년 9월 미국 LA로 떠나 그해 11월 가수 현미의 아들이자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이영준씨와 결혼했다고 합니다.